[체험사례] 공황장애를 겪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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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체질
- 작성일16-05-2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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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를 겪으며
송 ○ 선
2000년 겨울 공황장애 발생
2000년 겨울 밤낮이 바뀐 생활습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심리적 요인과 함께 어리다고 몸을 함부로 하여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공활장애가 발생하였다.
공황쟁애는 공황발작이라는 아주 무서운 증상이 있고, 이 부분이 제일 두렵고 무서운 부분이다. 공황발작이 오면 안전한 장소(집, 학교) 등 매일 가는 곳)에 가만히 있는데도, 또 아무런 위험이 없는 곳에서도 너무 무섭고 심장이 멈출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이런 비현실감이 너무 심해지면서 여러 번 겪게 되면 그 두려운 경험 때문에 평소에 잘 가던 곳도 못 가고 밖에도 잘 못 나가게 된다.
공황장애가 오면 보통 이런 식의 광장 공포증을 함께 겪는다.
그래서 백병원에서 최영희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았는4데 만성불안증(공황장애) 판명을 박고 치료로는 화이자제약 자낙스정 0.25mg을 2년간 복용하였다.
그렇지만 증세는 별다른 차도가 없어서 약을 끊고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서 공황장애는 무서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새롭게 인지하게 만들어주는 인지 치료만을 받아왔다. 간혹 공황장애가 오지만, 공황장애는 대부분 완치는 안 되고 공황장애가 올 때마다 인지 치료 받을 때 훈련 받은 것을 이용해서 공황발작을 이겨내는 것이다.
매순간 힘겹게 넘기며 이런 기억을 안고 평생 살아야 되는 줄만 알고 오랜 시간 그렇게 생활해왔다.
여드름도 고민
2010년까지 약 10년가 공황장애를 앓아오다 2009년쯤 선생님이 약간의 정신분열 증세도 보인다고 하였는데 의사선셍님은 공황장애로 받게 되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힘든 부분은 남자지만 깨끗한 피부를 항상 부러워했다. 그런 나는 항상 얼굴 양옆과 이마, 턱 밑 등에 여드름 뾰루지가 많이 나는 피부가 고민이었다.
여드름 치료에 좋다는 방법은 웬만큼 다 해보았지만 별로 효과도 없었고, 여드름 치료약인 한미제약 이소티논까지 잠깐 복용해봤지만 몸이 낳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 그냥 포기하였다.
2006년경 김또순 생식이야기 책을 보고 이런 책과 이런 신기한 치료법도 있구나 하면서 책만 보고 정작 용기가 없어 생식원을 가볼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살다 ‘난 지금 죽어도 건강하게 살고 싶고. 공황장애도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에 2010년 생식원의 문들 두드리게 되었다.
증세에 대한 상담을 받고 목생식, 수생식, 상화생식 처방을 좋은 소금과 함께 약 6개월 정도 복용하게 되었다.
생식원에서 복용하라고 알려준 대로 꾸준히 복용하였다. 한 일주일 정도는 공황장애가 간혹 오고 별다른 큰 변화를 못 느꼈다.
그런데 보름 정도 지나자 신기하게 어딜 가도 매일 오던 공황발작이 오려다가 마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효과들이 매우 신기하고 감사하여 ‘아 정말 치료가 되는구니’ 하는 생각에 열심히 생식을 복용하였다. 복용후 1달 만에 공황장애의 모든 증상(심장마비, 죽을 것 같은 느낌, 비현실감 등)이 거의 없어지면서 과거에 긴 시간 동안 경험으로 얻었던 공황장애의 무서운 기억들도 조금씩 사라져가 잘 못 나가던 밖에도 자주 나가 돌아다니게 되고 하고 싶은 것도 여러 가지 하게 되었다.
생식 3개월 만에 여드름도 없어져
생식복용 3개월 만에 고민이던 여드름도 거의 안 나고 기존에 잇던 여드름 흉터자국도 많이 좋아져 피부에도 자신이 생겨 사람을 만나는 게 즐겁고 자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살면서 의기소침하고 항상 남 앞에서 작아지는 듯한 모습으로 살았는데 자신감과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게끔 변화되었고, 집중력이 좋지 않아 한 곳에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었는데 생식 복용 후 많이 좋아져 한 번 시작한 일을 끝을 맺게 되는 경험도 자주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항상 건강을 염려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마음으로 살았던 내게 편안하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오행육기 창시자이신 고 현성 김춘식 선생님과 김또순 원장님 등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