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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사례] 척주종양 생식으로 완치 판정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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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체질
  • 작성일16-05-28 18:07
  • 조회1,7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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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종양 생식으로 완치 판정받다

이 ○ 희

 

손발이 저려오다

내가 생식을 하게 된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13년 전에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척추종양으로 판정을 받고 여러 날 고민하다 퇴원을 하고, 그 다음날 생식원을 방문하여 생식처방(병치처방)을 받아 생식을 하면서 운동을 하였다.

3개월 정도 지난 후에 인천길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고 취업하여 직장에 다니면서도 지금까지 계속 생식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아프게 된 것은 그 당시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손발이 저려오는 증상이 계속되어서 여러 군데의 병원과 한의원, 잘한다는 곳을 찾아 지방으로 내려가서 침도 맞아보기도 했으나 별로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인천 세브란스병원에서 MRA검사를 권유하면서 영동세브란스병원에 예약을 해주어 다른 사람은 한 달 이상 기다려 촬영을 하였지만 나는 3일 만에 촬영을 하고 이틀 후 필름을 찾아 인천 세브란스병원에 건네주니 바로 입원을 하라고 하여 입원을 하고, 정밀 검사를 시작하여 약 보름 후부터 치료를 하였으나 정확한 내역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약 한 달 후 영동세브란스병원에 추천해주어 응급실로 간 후 반나절 만에 병실을 배정해주었다(다른 사람은 보름을 대기하여도 힘들다고 함)

다시 검사를 시작하여 약 20일 후에 검사 결과를 설명해주었다. 담당의사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척추계통에서 최고 권위자였다. 검사 결과는 비참하였다.

 

병원에서 척추 종양 판정을 받다

경추 3, 4번의 신경다발 속에 종양이 생겼다면서 필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였다.

정확한 종양을 알려면 조금 떼어내어야 하는데 전신마비 확률이 80% 이상이라서 검사수술을 결정하여 통보해 달라 하였다

아내와 고민을 2, 3일 하던 중 연락이 왔다. 내일 아침 8시에 수술을 시작할 것이니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아내와 결정을 보았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생식과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고 차도가 없으면 그때 수술을 하자고. 수술 전날 밤12시에 퇴원을 하였다.

생식법은 전에 우연히 서점에서 오행생식요법이라는 책을 사서 읽어보았기 때문에 시도해 보고 싶었다.

퇴원하여 택시를 타고 인천 집으로 와서 자고, 아침에 관악산 입구에 있는 생식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빵모자를 쓰고 있는 김춘식 원장을 만나게 되었다.

 

생식과 생녹두를 갈아먹다

생식법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과 체질 점검을 하고 생식을 처방해주셨다. 생식 4가지와 검은 설탕 한 숟갈, 생강차 한 봉, 그리고 생 녹두를 갈아서 수시 복용(녹두는 종양을 삭힘)하라고 하셨다(운동 처방도 같이 해주셨다).

그때 아내도 체질 점검을 같이 하였는데 나에게 야단을 치셨다. 아이 둘을 낳으면서 둘 다 제왕절개를 하여 임맥의 손상이 심하다면서 지금은 나이가 적어 다른 곳에서 보충이 되어 괜찮아 보여도 나이가 들면 그 증상이 나오니, 너 아이 낳느라고 그런 것이니 너가 참고 살아라 하셨다.

그날부터 하루 세끼를 생식하고 녹두는 세 번에서 네 번을 먹었지만 별로 거부반응은 없었다.

운동은 팔운동 200, 손운동(잼잼) 200, 목운동 50, 팔굽혀펴기 50, 앉았다 일어나기 50회를 하루 3회를 꾸준히 하였다.

그 당시 딸아이 둘은 고향본가에 보내 할머니와 증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으나 아이들이 보고 싶어 다시 데려왔고 그전에 분양받은 아파트는 해약하기 싫어 전세를 주고 처가에 들어가기로 하고 아이들은 다시 본가로 내려 보내야 했다

아빠,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우는 아이들을 강제로 보내야하는 아픈 마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처가생활이 2달쯤 장인, 장모에게 눈치가 보였다.

아내와 상의하여 인천으로 다시 내려 왔다, 아이들도 데려왔다, 단칸방에서 모두 잠을 잘 수 없어 나는 부엌 위 다락에서 잠을 자야만했다.

벌이가 없는 상태에서 생활은 점점 빈곤해져 아내는 직장(유치원 교사)을 나가고, 사지가 멀쩡한 나도 갑갑하여 병원에서 다시 검진을 받기로 하고 인천 길병원에 가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경추MRA를 촬영하여 필름이 나오는 날,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찍은 필름을 가지고 가서 비교를 해주었으면 하고 상담을 하던 중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나가서 약 1시간 뒤에 와서는 축하한다고 하였다.

필름에는 확실히 없어진 것으로 판정이 났다고, (혼자는 의심이 생겨 각과의 과장들과 상의하여 난 결론이라 함) 나와 아내는 기뻐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물론 확인서도 받았음).

 

병원에서 완치판정을 받고 취업하다

나는 직장도 다시 구하였고 그해 12월에는 우리 아파트에도 입주하였다. 그 후 생식은 계속하였고 운동은 주말에 서울관악산에 약 8년을 다녔다.

세 끼 생식은 약 2년 정도 하고, 그 후는 점심을 먹지 않는 두 끼 생식을 지금까지 하고 있으며 생식에 대하여 많은 지식도 얻게 되었다.

작고하신 김춘식 선생님과 김또순 원장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